유엔전적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국보 제 33호)
이 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540~576, 제위)이 세운 기념비이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일 컫는다.
단양 적성의 진흥왕비와 비의 성격이나 형태가 거의 비슷하다.
비문 첫머리의 신사년 2월 1일 임은 진흥왕 22년(561)으로 추정되어 기존 3개의순수비보다 수년
비문 첫머리의 신사년 2월 1일 임은 진흥왕 22년(561)으로 추정되어 기존 3개의순수비보다 수년
앞서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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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척화비
1866년[고종3]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고종8]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물리친
정부가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중의 하나이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 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르 파는 일이다"
라는 내용이 전면에 큰 글씨로 ", 만년에 걸친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라는 내용이 좌측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높이 123cm, 폭 46cm, 두께 20cm이다. 원래 창녕읍 교하리에
있던 건이 광복 후 막옥정 공원으로 옮겨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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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천 3층 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 10호)
이 삼층석탑은 원래 창녕읍 퇴천리의 민가에 무너져 있던것을 1969년 10월에 해체.수리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 탑이 발견되었던 곳 주위에서 기와와 자기 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어 비교적 큰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내력이나 절의 이름을 알려주는 유물이나 기록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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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객사
객사는 외부의 관원이나 외국사신이 묶는 숙소이자,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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